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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파란만장한 인생사.... 본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될뻔했던 심수봉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먼저, 심수봉의 가문은 뼈대 깊은 국악 명인 집안입니다. 피리와 퉁소의 명인이었던 심팔록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적 DNA는 그의 아들, 판소리&가야금병창의 명인인 심정순을 거쳐 소리 명인 심재덕에게 내려옵니다. 심수봉은 그 심재덕의 4남1녀 중 막내입니다. (심수봉의 일가친척들 중 상당수가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에 평생토록 매진하였으며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명인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짐)
심수봉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였고,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 한 채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인의 피는 못 속이는지, 심수봉은 네 살 때 부터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심수봉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됩니다. 심수봉의 어머니는 심수봉이 성장하여 피아니스트나 대학 교수가 되기를 바란 까닭에 피아노를 가르쳤지만 심수봉은 피아니스트가 아닌 밤무대 가수가 되고 맙니다. 가세가 기울어 심수봉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그녀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우연찮게 심수봉의 무대를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 심수봉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이지요. 이후 심수봉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과 황성옛터를 불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녀의 노래를 듣자마자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심수봉의 나이는 불과 21 살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진 =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그후... 심수봉은 심심찮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 불려나갔습니다. 그러다가.....1979년 10.26 사태가 터지고 맙니다.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쏜 뒤 그를 부축하고 있던 심수봉에게도 총을 겨누었으나 천만다행으로 격발은 되지 않았습니다.
심수봉은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당시 자리에 같이 있던 모델 신재순과 함께, 사건의 수사를 맡은 전두환 계엄사 합수본부장에게 끌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됩니다.
[사진 = kbs2 승승장구]
심수봉은 이 조사에서 정신이 이상하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정신 병원에 강제로 끌려가 한 달 동안 입원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였지만 입원 당시 수차례 맞았던 주사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심수봉은 국민들에게 10.26 사태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괴상한 이유 때문에 방송 정지 처분까지 당하고 맙니다.
방송 정지 기간 동안 심수봉은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의 ost를 부르게 되는데, 이 또한 제목에 '순자'(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영부인)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처분을 당합니다.
[사진 = mbc 놀러와]
시간이 흘러 1984년, 심수봉은 희대의 명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히트쳐 화려하게 복귀를 하나 싶었지만 그 이듬해 발표한 '무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괴한 이유로 또다시 방송 정지 처분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1987년 발표한 '사랑밖에 난 몰라'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뛰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심수봉은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였습니다. 군부 정권이 끝난 후 심수봉은 '비나리', '젊은 태양', '백만송이 장미' 등 다양한 곡들을 히트쳤습니다.
격동의 1980년대를 직격타로 맞았음에도 심수봉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수많은 희대의 명곡들을 남겼습니다. 지금도 그녀는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 가수'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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